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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미에 거주하시는 한국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참 좋은 날입니다.
나는 왜 탈북자 선교에 힘쓰고 있을까요?
지금까지 1,000명 넘게 탈북자를 먹이고 150명을 자유의 땅으로 망명시킬 수 있었습니다.
아래 글은 금년 3월에 내가 미국으로 데려온 조진혜양의 아픔을 나눈 글입니다.
「결국 동생은 풀물을 먹다 못해 나의 가슴을 헤쳐 뜯으면서 먹을 것을 찾다가 굶어 죽었습니다.
어머니는 언니가 중국에 팔리어 갔다는 소식을 듣고 중국에까지 가서 찾다가 결국 찾지 못하고 우유가루 두 봉지와 쌀 한 자루를 메고 집에 돌아오셨지만 죽은 동생을 생각하며 울다가 안전원들의 감시에 걸려 중국에 갔다 왔다는 것이 발각되어 잡혀갔고, 가져온 것을 다 빼앗기고 할머니는 나의 옆에서 환상에 보이는 삶은 감자 한 알을 먹고 싶어 하시다가 굶어서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는 감옥을 탈출해 집에 돌아왔고 고문으로 인해 머리가 터지고 온 몸에 성한 곳이 없이 맞아 움직일 수 없어 두 달을 누워서 계셨습니다.
그러다 거의 죽어가는 우리를 보시고는 더 이상 나머지 자식은 죽일 수 없다고 생각하셨는지 초인적 힘으로 우리 셋을 데리고 중국을 향해 떠났습니다.
나는 5살 동생을 업고, 6살 되는 동생은 손잡고 겨우 움직이는 어머니를 부축하면서 10리를 걷자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신발 없는 발에서는 피가 나고 울면서 한 집에 들어가서 5일만 남동생을 봐달라고 부탁하면서 동생에게 다섯 밤만 자면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지금도 동생의 말이 귀에 쟁쟁합니다.
“둘째 누나야, 왜 막내 누나는 데려가면서 나는 안 데려가?”라고 말하던 동생에게 “국철아 어머니는 쌀을메고 누나도 쌀을 메고 나면 사탕과 과자는 막내 누나가 메야 하니 빨리 갔다 올게.”라고 하고는 집을
나섰습니다.
한 달 만에 중국에서 되돌아가려고 두만강을 건너다가 물이 불어 건널 수도 없었지만 더 막막한 것은 선거에 참석하지 않은 자는 총살 시키라는 김정일의 명령이 있었다면서 돌아가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한 달 후 돈을 주고 다른 사람을 시켜서 데려다 달라고 했더니 이런 기막힌 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애를 봐주던 집의 사정도 어려워지자 애를 밖에 버렸고 결국 바람 부는 갈대밭에서 “누나는 언제 오느냐고 ...” 찾으면서 굶어 죽었다는 것입니다.
오빠는 물에 빠져 죽고 우리 6형제의 운명은 이렇게 끝이 났고 우리의 집안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도대체 누구의 잘못 때문에 이런 비극이 일어날 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이렇게 울먹이며 잊을 수 없는 과거를 떠올리는 조진혜양이 린우드에 살고 있습니다.
내가 어찌 탈북자들을 찾아가야 하고 같이 울어야 했습니까.
15개월이나 감옥에도 같이 가야 했고, 2006년 8월 9일 중국으로부터 추방된 후에도 30명이란 탈북자를 한국에 18명, 미국에 12명을 망명시켜야 했으니 하나님은 아십니다.
한국 국회 인권포럼에서는 나에게 인권상을 수여했고 미국은 3가지 상을 수여했습니다.
그중에 용감한 시민상은 부상으로 5만 달러를 주었습니다.
1년이 지난 현재 그 돈을 모두 탈북자 망명 구제에 사용하였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어찌 내 민족의 화 당함을 참아 보며 내 친척의 멸망함을 참아 보리이까”
왕궁에서 행복하기만 했던 에스더 어쩌면 죽으면 죽으리라.
자기 민족을 위해 일어났습니까?
오늘 방송을 청취하시는 여러분!
즐거운 성탄절과 연말연시가 다가옵니다.
이 추위에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쫓기고 있는 탈북자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펴고 싶지 않으십니까?
탈북자 망명의 성금을 보내기 원하시는 분은 206-354-6019로 연락바랍니다.
E-mail : johnsyoon@hanmail.net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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